김홍기의 책들2009.06.23 09:42

S# 너의 불행에는 이유가 있다.

 

나는 일본영화를 좋아한다. 헐리우드의 영화 문법을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받아들인 나라. 그러나 가부키와 노, 분라쿠와 같은 일본의 전통적 연희양식을 영상언어에 접합했던 일본은 20년도 채 못되는 짧은 시간 속에 세계인을 놀라게 하는 영화 대국으로 성장했다. 구로자와 아키라의 <7인의 사무라이>를 비롯, 대학시절 열심히 '다다미쇼트'란 걸 공부하려고 지루하기만 했던 오즈 야스지로의 <동경 이야기>란 영화를 수 차례 봤었다.

 

어디 이뿐인가?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와 전후 일본세대의 도덕적인 환멸감을 화면에 가득 메웠던 이타미 주조의 <담포포>도 기억난다.(결국 그는 환멸을 이기지 못했던 탓일까? 자살로 생을 마감했지만) 사회를 향해 독을 내품는 낙오자들의 세대. 바로 현대 일본의 모습을 그린 두 명의 감독이 있다. 스즈키 세이준과 바로 기타노 다케시다.

 

스즈키 세이준의 영화는 너무 정치적인 메세지가 강한 탓인지 항국에는 소수의 시네필들에게만 알려져 있는 반면, 기타노 다케시는 <소나티네><키즈리턴><기쿠지로의 여름>등의 영화로 많은 한국팬을 거느리고 있다. 많은 이들이 기타노 다케시를 영화감독으로 알고 있지만 그는 일본 내에서 유명한 코미디언이고 독설가이며 배우다.

 

물론 가부장적 발언을 잘한다고 한국 내 페미니스트들에겐 '위험한 남자'로 종종 불리기도 한다. 그런 그가 일본사회를 서슴치 않고 까발리며 독설을 품었다. 바로 <위험한 일본학>이 바로 그 책이다. 현대 일본이 불행해진 까닭을 정치와 가정, 사회편으로 나누어 다양하게 설명한다.

 

그의 글 속엔 독설이 주는 신산함과 강렬한 매혹이 있다.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해본다. 한국에서 이렇게 정치인을 향한 독설을 뿜었다간 어떻게될까 하고 말이다. 바로 프로그램에서 하차를 하거나  쇼설테이너로 몰려 갖은 제재를 당할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다보니 속이 시원해진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소극적인 외교를 한다며 해외를 향해 '일본은 파산되었으니 더 이상 돈을 달라고 하지 말라'고 주장하고 대사관도 민영화 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S#2 대사관을 민영화할 수 밖에 없는 이유

 

그가 말하는 민영화는 한국의 민영화와는 다른 노선을 걷는다. 그가 대사관의 민영화를 말하는 이유는 대사를 '각하'라 부르고 구미문화에만 심취해있는 쓸모없는 외교관을 잘라버리는 것이 좋다고 믿기 때문이다. 호텔을 매입, 여행사로 하여금 일을 시키라고 말한다. 그리 틀린말도 아니다. 해외정보수집과 자국민 안전을 책임지는 것이 외교관의 임무지만 이를 방치한 외교관들. "국내에선 출세경쟁 때문에 샐러리맨이 되고 외국에 나가면 특권계급 행세를 한다"고 독설을 내품는다. 어찌 읽다보니 한국의 외교관과 그게 그거지 싶다. 호텔을 지어 정보수집을 하기 위해 몰래 카메라를 달고, 몰카내용을 '서양물'로 성인용 비디오 코너에서 팔게하자는 그의 독설엔 동의할수 밖에 없다.

 

S#3 국회의원에게 자격시험을 치게 하자

 

제대로된 국회의원이 없는 게 일본의 불행이라며, 국회의원에게 자격시험을 치게 하자고 주장한다. 1종 2종 3종 시험으로 나눠서 총리가 되려면 1종 시험을 보게 하고 나이가 들면서 게으름을 피지 않도록 갱신시험을 보게 하잔다. 나아가 자신이 총리가 되면 일본을 해산하고 국민들을 난민자격을 부여해 해외로 보내도록 하고 싶단다. 그만큼 일본은 지금 위험상태라는 것. 읽다보니 어쩜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의 모습과 오버랩이 되는지 다시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 20세기를 빛낸 100인과 같은 타임지 기사를 자신만의 견해로 풀며 독자적인 인물 선정에 나선다. 서양편 50명 일본편 50명 이렇게. 이들을 불행의 원흉이라 부른다. 그가 쓴 서양편 불행의 원흉에 거론된 인물 중 두 사람이 유독 눈에 들어온다. 1위가 히틀러다. 일본의 유명한 연극연출가 아사리 게이타와 연결지어 설명한 부분이 재밌다. 그는 나가노 올림픽의 총연출을 맡았는데. 권력지향적인 인간들의 공통점이 올림픽을 좋아한다는 것. 성화봉송도 사실 베를린 올림픽이 시초다. 평화의 제전과 히틀러가 만든 성화봉송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려준다. 주변에는 온갖 아부꾼과 괴링같은 나쁜놈들만으로 채운 20세기 최고의 악당으로 말이다. (요즘 내가 굉장히 싫어하는 누군가와 닳았다)

 

핸리포드를 선택한 점은 꽤 놀랍다. 그의 독설에 기반을 이룬 역사와 정치학에 대한 깊은 이해가 드러나는 부분이다. 포드는 경영학도였던 내겐 경영학 그 자체다. 포디즘은 단순하게 대량생산방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자본이 노동을 포섭하고 지배하는 방식, 바로 그것이다. 노동자가 술을 먹으면 효율이 떨어진다고 해서 술을 금지시켰던 매니저. 다케시는 핸리포드를 일본의 부국강병을 위해 어린 농촌 소녀들을 강제로 산언덕을 넘어 공장에서 메리야스와 팬츠를 만들게 했던 군국주의적 정치가들과 비교한다. 사실 이점은 한국도 마찬가지다. 섬유산업의 부흥을 위해 강제로 농촌을 파괴한 박정희 대통령과 연결된다. 일본의 근현대사는 이상하리 만치, 한국적 상황에도 절묘하게 대입이 된다.

 

이외에도 여성과 어린이들의 천국이 되어가는 일본의 모습이, 바로 불행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아이들은 자기의 방이 있으되 아버지는 정작 자신이 쉴 공간이 없는 나라. 엄마가 툭하면 아이들에게 '넌 아빠보다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헛소리나 늘어놓는 정신빠진 나라'라며 여성화된 사회의 병리에 칼을 꽂는다.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이 그를 자꾸 가부장적인 인간으로 낙인 찍는 걸 나 또한 좋아하지 않는다. 그가 한 말에는 오늘날 우리 한국사회또한 곱씹어야 할 부분이 많다. 툭하면 수평관계, 친구같은 아빠를 강조하는 이 땅의 페미니즘이 부딪치게 될 미래의 모습이 현 일본에 있다. 어른도 없고 그저 저 성질에 못이겨 칼질하고 아버지에 대한 환상은 깨진지 오래고, 아이들이 잘못해도 옆에서 야단쳐 주는 다른 남의 아빠가 없다는 사실. 이것이 흉악한 일본 내의 청소년 범죄와 연관되어 있다고 그는 늘어놓는다.

 

 

S#5 아이들에게 자기 방을 주지 말것

 

아이들에게 안락한 자기방을 준 결과가 외톨이와 오타쿠를 양산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은둔형 외톨이가 양산되는 사회는 바로 전후 일본 세대의 민주교육이 발생시킨 한 부분이라고 지적한다. 사회성은 없고 자의식만 강한 인간이 나타난거다. 이 점은 흙장난하며 아이들과 뛰어놀던 세대는 가고 비디오게임에 미쳐 현실과 환상을 구분못하는 이 땅의 우리들과도 닮았다.

 

기타노 다케시의 독설엔 일본에 대한 시민으로서의 진정한 애정이 묻어난다. 우리에게 북한이 있듯, 일본의 역사에는 오키나와가 있다.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는 유독 이 오키나와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 많다. <소나티네>에서도 동경에서 활약하다 오키나와로 숨어든 야쿠자들의 모습을 다뤘다. 영화를 보면서 그게 궁금했는데, 이 책을 읽고 의문이 풀렸다. 역사의 그늘을 안고 있는 곳 오키나와. 전후 일본에 버림받고 미국 군사기지의 설치와 더불어 짓밟히고 살아온 어둠의 역사를 가진 공간이다. 현재의 일본을 "미국이라는 야쿠자의 오야붕에게 관리비를 지불하고 있는 상점같은 나라'라고 내뿜는 그의 독설앞에, 한국의 모습 또한 별반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든다. 효순이와 미선이의 죽음이 여전히 이 땅에서 기억되는 같은 이유일거다.

 

 

오키나와를 가본지도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아름다운 휴양지고, 툭하면 정상회담이 열리는 곳이지만, 814억엔이나 들여서 하는 정상회담이 별 소득이 없다는 점을 들어 국민의 혈세를 까먹는 일본을 비난하는 다케시. 우리들 또한 얼마나 여러차례 물먹는 하마처럼 혈세를 사용한 정상회담을 자주 개최했었나 싶다. 이제 글을 마무리 하자. 난 다케시가 부럽다. 이렇게 강하고 거친말을 해도 여전히 감독을 하고 영화를 만들수 있는 사회가 부럽다. 영화 <소나티네>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이 자결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위험한 일본의 모습을 읽으며, 한국 또한 이와 별반 다를바 없고, 심지어는 더욱 심하다는 걸 느끼게 된다. 영화같은 자결을 꿈꾸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결론은 '한국이 더 위험하다'.......참 슬픈 현실이다.

 

                                          
Posted by 김홍기